우유는 전 세계인이 매일같이 마시는 대표적인 식품 중 하나지만, 그 인식은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유럽은 오랜 낙농업 전통을 지닌 지역으로, 우유가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내려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유의 건강 효과에 대한 재해석과 윤리적 소비, 대체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럽의 우유문화, 우유에 대한 건강 인식, 그리고 한국과의 소비 차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유럽의 우유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낙농업 역사를 지닌 대륙 중 하나로, 우유와 유제품은 유럽인의 식생활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우유와 함께 치즈, 요구르트, 크림 등의 유제품을 발달시켜 고유한 식문화로 정착시켰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역마다 수십 종의 전통 치즈가 있으며, 이는 식사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아침 식사에 우유와 곡물을 함께 섭취하는 습관이 널리 퍼져 있고,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우유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한편, 유럽의 우유문화는 단순한 음료 개념을 넘어서 가족문화, 전통, 요리문화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치즈 퐁듀와 라클렛 같은 전통 요리가 겨울철 가정의 필수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처럼 유제품은 ‘함께 먹는 음식’, ‘전통을 잇는 음식’이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우유를 단지 칼슘 보충제로 소비하는 한국과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에서도 우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강한 식품으로 무조건 권장되던 우유가, 이제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체질적, 윤리적, 환경적 이유로 회피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채식주의자와 유당불내증을 겪는 이들, 그리고 기후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아몬드밀크, 귀리우유, 코코넛밀크와 같은 식물성 대체 식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럽 슈퍼마켓에서는 이러한 대체 유제품이 한 진열대를 차지할 만큼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우유에 대한 건강 인식은 어떨까?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우유를 건강식품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의 뼈 건강, 성장 발달, 면역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유럽 각국의 정부 및 보건 기관이 학교 급식에서 우유 제공을 장려하며 만든 정책적 결과이기도 합니다.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공공기관 주도로 유제품 소비를 장려해 왔고, 대다수의 국민은 우유가 필수 식품이라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유럽 내에서도 우유 섭취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유당불내증이 전 세계적으로 65%에 달한다는 보고, 일부 연구에서 우유 섭취가 오히려 골다공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단순히 “우유 = 건강”이라는 등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2014년 스웨덴 연구진의 발표는 우유 섭취가 많은 여성일수록 골절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해 유럽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유럽 보건기관은 ‘우유를 무조건 마시라’는 접근 대신, 개인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섭취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식품영양학회(DGE)는 우유 섭취 권장량을 낮추었고, 영국 NHS는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대체식품 가이드를 별도로 운영합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유제품을 섭취하더라도 가능한 한 가공이 덜 된 유기농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소비자는 일반 우유보다 지방이 풍부한 원유나 발효유, 전통 치즈를 건강에 더 이롭다고 여기며, 공장식 축산 대신 전통적인 농법을 사용하는 농가에서 생산된 유제품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즉, 유럽인은 단순한 ‘건강식품’으로서의 우유가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식품’을 찾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과의 소비 차이는?
한국의 우유 소비는 ‘성장기 필수품’, ‘뼈 건강 필수 영양소’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1970~80년대 경제 성장기에 정부 주도의 낙농 진흥 정책과 함께 학교 우유급식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형성된 인식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우유를 안 마시면 키가 안 큰다”, “칼슘은 우유로 보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며, 실제로도 우유를 건강관리의 필수 요소로 여기는 문화가 강합니다. 반면 유럽은 우유를 하나의 식품이자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즉, 건강에 좋기 때문에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마트에서는 흰 우유보다 치즈나 플레인 요구르트의 종류가 훨씬 많고, 식물성 우유 코너는 북유럽이나 독일에서는 한 라인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전체 우유 소비량 중 약 15%가 귀리우유, 아몬드우유 등으로 구성되어 있을 만큼 대체 식품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은 건강만큼 환경과 동물복지 문제도 고려한 소비가 활발합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후 위기’ 해결에 동참하는 일환으로 동물성 제품 소비를 줄이거나, 탄소배출이 적은 대체 제품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Z세대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소비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우유 역시 그 대상이 됩니다. 이로 인해 ‘플렉시테리언(유연한 채식주의자)’이 늘고, 식물성 제품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아직도 ‘하루 1~2잔 우유 섭취’를 공식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유당불내증 환자가 많음에도 관련 제품이 부족하고, 대체 식품에 대한 정보나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식물성 우유와 비건 식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점차 유럽식 소비 패턴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럽은 오랜 식문화 전통 속에서 우유를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닌, 다양한 의미와 선택지를 지닌 식품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체질, 가치관, 환경적 요인에 따라 우유나 대체식품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방식은, 한국이 배워야 할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유를 무조건 마셔야 한다거나, 반대로 완전히 해롭다고 보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이고 개인 중심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